저는 밀실 스릴러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이 그려나가는 상황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 스릴에 있어서 더 가중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밀실이라고 하면 보통 갇힌 방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최근에는 이 제한된 공간이라는 소재를 다르게 해석한 영화들이 여러 가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영화는 폴:600미터 라는 영화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 듯이 600미터 상공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밀실 스릴러라고 하기에 애매하긴 합니다. 정말 그 어떤 환경보다 확 트여있는 환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런데 사방이 트여있어도 주인공들이 발 디딘곳은 타워 위의 큰 쟁반만 한 공간뿐입니다. 이곳에서 대체 어떻게 탈출을 하고 살아남겠다는 건지 그 점이 참 궁금해서 저는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럼 우선 줄거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배경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인 베키와 그녀의 남편인 댄이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장면입니다. 그 둘과 베키의 절친인 헌터는 금슬 좋은 댄과 베키를 보고 농담을 하며 앞서가고 있고 둘도 힘들지만 즐겁게 암벽 등반을 하는데요. 그때, 갑자기 절벽에 있던 새 둥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새 때문에 베키의 남편 댄이 추락사하고 만다.
남편 댄을 무척의나 사랑했던 베키는 그 후로 술과 약에 취한 채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립니다. 속된 말로 폐인이 되어버리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걱정하며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습니다. 댄이 살아있을 적에 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아버지가 생각나서 오히려 아버지가 더 밉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한 절친 헌터의 제안
그러던 어느날 사고 현장에 있었던 절친 헌터가 베키를 방문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헌터는 Danger D라는 별명으로 익스트림 스포츠 포스트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어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베키를 만난 그녀는 달라지지 않은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에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이자 다음 달에 철거 예정인 송신탑 B67 타워를 올라갈 계획이 있는데 베키의 댄에 대한 트라우마도 회복시킬 겸 그녀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암벽등반을 좋아하던 댄의 유골을 뿌려주자는 것이죠.
많은 고민을 하다가 베키는 댄의 사진을 보고는 유골을 뿌려주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먼길을 떠나 타워를 보고는 다시 포기할까 고민하다가도 결국 베키는 그곳을 오르기로 결정합니다.
타워의 사다리는 매우 노후한 상태였지만 헌터는 겁먹은 베키를 독려하며 앞장서서 타워를 오릅니다. 오랫동안 쉬었던 베키와는 달리 헌터는 탑을 척척 잘 오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오르는 실력이 문제가 아니고 탑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흔들리고 도중에 사다리의 지지대가 부서지고 심지어는 고정하고 있던 나사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처럼 오래된 타워가 전반적으로 매우 약한 구조물인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베키와 헌터는 꿋꿋하게 위로위로 계속 올라갑니다.
상공 600미터에서의 고립
어쨌든 두 여자는 꼭대기에 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드론을 띄워 풍경사진을 남기고 줄 없이 매달린 사진을 찍고, 그밖에도 둘이 신나게 인증숏을 남기고 미션 성공을 자축한 뒤 베키는 남편의 유골을 뿌려줍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헌터 역시 댄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우리 셋은 정말 끈끈한 사이였구나 하고 베키는 새삼 다시 느낍니다. 정말 둘에게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남다른 스릴과 성취감을 즐기고 이제 내려갈 때입니다. 조심 조심 베키가 먼저 내려가던 도중 아까부터 불안하던 사다리가 결국엔 부서지면서, 꼭대기 쪽의 한 칸을 제외하면 타워에 붙어있던 모든 외벽 사다리가 다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둘은 밑으로 내려갈 수단이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구조요청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정말 신기하게도 한때 송신탑으로 쓰였을 이 타워의 정상에서는 핸드폰이 터지질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어떻게 이 고공에서 살아남을까요?
후기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전반적으로 재밌게 보았습니다. 앞서 소개드렸듯이 정해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스릴러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았습니다. 밀실 스릴러 중에서도 그 상황은 극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마트나 모텔 등 어떤 건물에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누울 공간도 없는 식탁보다 작은 곳에 고립되고 먹을 것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자다가 잠꼬대라도 하면 600미터 밑으로 자유낙하해야 하는 환경입니다. 상황 자체는 정말 스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결국 빠져나가는 방법이나 중간의 반전 등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내용들입니다. 정말 오! 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실망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